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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UNG-KYUNG

"자, 말은 편하게 하자 우리"

 

  여느 때처럼 침대 위에서 포도 푸딩을 퍼먹는 중이었다. ‘역시 푸딩은 포도 맛이지’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중 무심코 읽게 된 글 하나. 작년 이맘 때쯤 쓴 나의 자기소개 글이었다. ‘아, 이건 아닌데’  평소엔 잘 쓰지도 않는 ‘-합니다’ 체와 지루한 표현들은 영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언제부터 내가 존댓말을 그렇게 잘 썼다고. 게다가 주어, 목적어, 서술어가 다 갖추어진 문장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턱’하고 막혀왔다. 생전 입지도 못해본 더블버튼 수트를 단추 끝까지 채워 입은 느낌이었다. 내 글은 원체 다 비문 남발에 아무 말 대잔치인데. 아무래도 안 어울리는 정장은 때려치우고 후드티에 눌러쓴 비니, 말하자면 내 스타일, 역시 그걸로 가야겠다.

  보통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자기소개를 해보라 하니 나 역시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싸이월드 때처럼 백문백답을 할 수도 없고 이것 참. 일단 간단히 말하자면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14학번 이성경 나이는 23 집은 서울, 이게 서류상에 적힌 나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보자면 이 짧은 소개도 제대로 된 것이 하나 없다. 건축학과지만 후에 건축 일을 할 생각은 없고, 23살이지만 빠른년생이라 24살로 살아가고 있다. 14학번이지만 아직도 졸업은 2년 남았고 그조차도 언제 마음이 바뀌어 휴학할지 모른다. 다들 이래서 자기소개가 제일 어렵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알수록 모를 존재고 나를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아, 내가 나를 설명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어찌 됐든 그런 나의 오랜 꿈은 자서전을 쓰는 것이다. 기억조차 가물한 7살 때부터 나중에 크면 자서전을 쓸 것이라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때는 그냥 ‘큰 인물이 돼야겠다’ 정도였는데 지금은 소소한 책 한 편 내면 참 좋겠다는 마음이다. 지난해엔 그 자서전 형식도 정했다. 인터뷰 모음집! 내 얘기 말고 주변 사람 얘기를 쓸 것이다. 주변에서 살아가는 이에게 글 한 편 선물할 수 있다면 그보다 선물인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자식을 낳을 생각도, 큰 인물이 될 욕심도 없는 내겐 그것이 이름을 남기는 일이 될 것이다. 이 페이지는 그를 위해 만들었다. 그러나 아직은 어린 내 눈으로 누굴 재단하는 게 힘든 일이라 인터뷰를 해놓고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지금은 그냥 언젠가 그 이야기들이 앉게 될 집을 꾸민 것이라 보면 될 것이다.

 

  ‘살겠다는 것들은 다 예쁘다’고 말하는 어느 작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렇게 예쁘게 애쓰며 살아가는 중이다. 요즘의 나 아니 언제나의 나는 같은 일상을 반복할 뿐이지만 최선을 다해 행복하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은 늘 아름답기에. 이것저것 일을 벌이는 내가 미련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항상 애쓰는 중이다. 그러니 부디 ‘쟤는 뭐 먹고 사려나’라는 걱정보다는 ‘얘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살고 있구나’ 하고 따뜻하게 봐준다면 더 할 나위가 없겠다. I'm out 이다 뿅!  

 

2018. 02. 09. 괜히 마신 아아메로 잠 못 이루는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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